이슈2015.05.29 12:56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잘 알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게 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최근 '일베'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디씨, 오유, 뽐뿌, 82쿡, 베스티즈, 스르륵, 루리웹, 엠팍, 클리앙... 어떤 곳은 남초이기도, 어떤 곳은 여초이기도 하며, 다양한 그들만의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5월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들 사이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여성시대"라는 한 폐쇄적인 여성전용 온라인 커뮤니티와 다른 커뮤니티 간에 일대 전쟁이 벌어져서 고소고발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사태에 대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여성시대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가지는 반면, 몇몇 언론에서는 이 사태를 여성혐오현상의 연장선상으로 보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분명 이 사건과 여성혐오현상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글들은,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시 : http://m.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482

예시2 : http://ppss.kr/archives/45440

본론부터 이야기하면, 여성시대가 모욕과 멸시에 가까운 비난을 받는 것과, 여성혐오증은, 서로 관련이 있지만,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혐오증이 상당히 퍼지고 있고 그게 사회문제가 될 수준이라는 점에는 강하게 공감합니다. 하지만 여성시대는 충분히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했기에, 여성시대의 여성들이 비난받는 것은 적정 수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런 현상이 은연중에 여성 전체에 대한 혐오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둘은 다릅니다. 그런데 여성측 입장에서 나오는 여러 보도는 이런 현상을 여성혐오증으로 진단하면서 여성시대를 옹호하고 있으며, 이런 잘못된 진단이 양성간에 갈등을 더욱 깊게 하고 있습니다.


여성시대가 일으킨 문제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제일 큰 것이 마녀사냥 및 여론조작입니다. 여러 사람이 피해를 입었고 그 중에는 장동민처럼 분명하게 잘못을 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제일 문제가 된 것은 웹툰작가인 '레스트바티칸'입니다. 이른바 '병맛' 웹툰의 선두주자인 '레바툰'의 한 내용이 여성혐오를 담고 있다며 여성시대 측에서 집단적으로 비난을 하며 여성혐오작가다, 일베충이다,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몰아갔고 이 내용 중에서는 과거 레스트바티칸이 실제 사건을 풍자하기 위해 그렸다가 문제가 일자 사과 후 삭제했던 만화를 교묘하게 편집하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여성이 끌려가는 장면은 어떤 만화나 영화에서도 자주 묘사되는 장면입니다. 표현이 약간 불편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이게 여성혐오로 비난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런 마녀사냥에 대해 사람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여성시대 측에서는 이런 마녀사냥이 사실은 '일베충이 여성시대를 사칭해서 조작한 것이다'는 여론조작을 시도했고, 하지만 이것이 조작임은 일베측, 그리고 여론조작글이 올라온 오늘의 유머 측에 의해서 밝혀졌습니다. 이후로도 악의적인 조작과 거짓말로 얼룩진 공지를 올리는 것이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그들의 의견에 비판글을 올리면 너도 여성혐오지? 일베충이지? 라는 말로 대응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런 행동은 본인이 뭔가 맘에 안들면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이고, 여기에 대해 상당수 사람들은 본인이 왕따를 당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공포와 함께 이런 행동에 대해 적대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에서 '왕따' 현상이 불거지면 어떤 비난을 받는지는 이미 티아라 이후 많은 사례가 보여준 바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가 이중잣대입니다. 이른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논리죠. 여성시대는 SLR클럽, 스르륵 운영진과 접촉하여 소모임을 그곳에 따로 만들고 음란물 공유에 이용했습니다. 여성시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음란물을 보고 공유한 것을 문제삼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들이 남자가 여성에 대해 음담패설을 하는 것은 여성혐오로 몰면서 그들 내부에서는 그런 것을 공유했다는 것입니다. 음란물 내용 일부는 남성연예인을 상대로 성희롱과 성폭력에 가까운 글들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여성이 어려운 위치에 처해 있다고는 해도, 이런 부분에서 여성이 남성을 갖고 노는 것은 즐기면서 남성이 여성을 갖고 노는 것은 비난받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고 차이가 난다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칼럼니스트 곽정은이 택시기사가 자기에게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불쾌했고 중간에 내렸다는 트윗을 했습니다. 하지만 곽정은은 방송에서 장기하에게 이 남자는 침대에서 어떨까? 와 같은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보면 여성시대에 의해 나타난 여성혐오는, 일반적인 여성 전체에 대한 혐오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성 전체에 대한 혐오는 장애인이나, 동성애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극단적 행위와 닮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일베에서 자주 일어나기도 하죠. 이번 여성시대 사건 및 '특정' 여성, 혹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혐오는 그런 것보다는, 일베에서 일어나는 다른 현상, 노무현 및 민주화에 대한 조롱과 모욕을 훨씬 더 닮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일부 감정적 야권지지세력이 인터넷에서 선민사상과 이중잣대로 사람들을 공격했고 그것이 노무현에 대한 적대적인 조롱을 낳은 것처럼, 여성시대에 대한 반감, 그리고 일부 페미니스트에 대한 반감도 그런 비슷한 이유에서 더욱 심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여성시대에 대한 혐오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고, 사람들이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자료를 수집하고 범법행위들에 대해 고소/고발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음란물 공유는 물론, 액상담배와 불법 의약품, 도서 미디어의 불법적인 공유와 거래, 각종 명예훼손, 개인정보 불법수집 등등. 인터넷 상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지던 불법 행위는 다른 커뮤니티에도 어느 정도 존재하지만, 여성시대처럼 종류와 강도가 심각한 곳은 드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여성'에 대해 갖는 혐오와, '여성시대'에 대해 갖는 혐오는 상호 관련은 있지만, 분명하게 근원이 다릅니다. 


기사 : https://www.hankookilbo.com/v/4ef18d3f4877491ba5d1a01df5100517 (한국여성단체연합 2014년 12월)

또한 일부 최근 연구들을 보면 여성에 대한 혐오가 전반적으로 늘어나면서 일베 외에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여성혐오가 발견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네이버나 다음의 포탈 댓글은 그냥 하고 싶은 말들을 일방적으로 내놓는 곳이지 공유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엠팍이나 오유를 비롯한 웹사이트에서 '보슬아치'라는 말이 사용된 적은 손에 꼽으며, 그것도 '이런 말이 있는데 무슨 뜻이냐, 너무 심하지 않냐'는 뜻이 상당수일 뿐입니다. 즉 여성측에서 일부 여성에 대한 다수 남자들의 혐오, 그리고 대다수 여성에 대한 일부 남자들의 혐오를 혼동하면서, 대다수에 여성에 대한 대다수 남자들의 혐오로 확대해석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예를 들면 '아몰랑'이란 말은 여성적 어투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여성혐오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보다 이런 여성시대의 만행과 일방적인 강요, 생각하기 싫어하는 태도를 문제삼는 단어죠.


아몰랑의 좋은 용법 사례 :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50530145645130



한국에서 일부 남성들이 여성에 대한 혐오가 심각하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성주의에서 우려하는 것만큼 많지도 않고, 그보다는 '일부 여성'에 대한 혐오가 더 강하고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여성시대 사건에 대해서 여성주의 쪽에서 여성 전체에 대한 문제로 확대해서 인식하면 할수록, 그리고 여성시대를 변호하면 할수록, 남성 쪽에서도 여성시대의 모습이 곧 여성 전체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최근 문제가 되는 사건을 이야기할 때는 어느 쪽이 우선 문제인지를 분명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북한이 한국 해군에 포격을 했는데 북한의 잘못 먼저 성토해야지 한국 정부가 설령 어떤 부차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한국 정부 먼저 비판하면 될까요?


이번 사건은 일부 남성들의 비난 수위가 지나치게 높고, 그리고 낙태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여러 부분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감정의 골을 깊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낙태에 대한 논쟁은 보다 낙태를 허용하는 쪽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지만 이번 여성시대 내에서 나온 태아=기생충 발언은 낙태 논의를 이루어지기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양성평등으로 바람직하게 나아가려면,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애초에 온라인 커뮤니티의 문화와 특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단언하는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분들이 부디 현 사태에 대한 문제점을 보다 정확하게 깨닫고, 여성시대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선을 그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여성시대를 변호하는 것은 여성을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Posted by 바른보수
이슈2015.03.30 03:10

조직원의 유형을 멍부-멍게-똑부-똑게의 네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그걸 리더와 직원으로 조합하여 나타나는 양상을 분석한, 이른바 멍부-똑게 모델은 대단히 좋은 시사점들을 준다. (과거의 포스팅 참조) 하지만 이 모델은 현실을 단순화하다 보니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특히 제일 큰 문제점은 ‘내 안의 멍부를 죽여라’고 할 정도로 멍부에 대한 비난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연 그럴까? 사실 세상 모든 사람이 가진 능력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부지런함은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며, 또한 멍청함과 똑똑함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것은 착한놈과 나쁜놈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단순한 일이다. 멍부도, 분명히 쓰임새가 있다.


일주일 뒤에 기말고사를 보는 상황을 생각하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이 때, 똑같이 90점을 받는 학생이라도, 멍부형인 A는 밤에 4시간씩 자고 하루에 12시간 넘게 공부하면서 90점을 받는다. 똑게형인 B는 할 거 다 하고 여유를 부리면서 하루에 6시간만 공부해도 90점을 받는다. 즉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둘 중의 하나가 필요하다. 머리가 좋거나, 아니면 머리가 나쁜 만큼 열심히 하거나. 머리가 나빠도 좀 더 고생하면 비슷한 성적을 올릴 수 있다. 토끼와 거북이처럼. 즉 '부지런함'은 분명히 '똑똑함'을 이길 수 있는 중요한 성품이다.

여기서 이런 차이는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른 데서 온다. 학창시절 노력하지 않고 시험을 잘 보는 B와 같은 사람을 우리는 천재라고 부르면서 부러워한다. 그리고 B가 하루에 12시간 공부하면 100점을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마다 공부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B에게는 6시간 공부하는 게 최적이다. B가 12시간 공부한다면 추가적인 성과를 거의 내지 못하고 91-92점에 머무르거나 오히려 피곤해서 90점도 못 받을 수도 있다. 즉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고, 오랜 시간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다르다. 결국 조직에서 사람의 유형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함을 강요하면, 똑게 유형은 죽어 나간다.

여기에 추가로 세상의 일들이 이런 시험이나 달리기만 있는 게 아니다. 기업에서 아이디어를 내는 일,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 뛰어난 연구를 하는 일, 이런 일들은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성과가 올라가지 않는다. 단순히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수준을 넘어서, 창조력, 혹은 혁신이 필요하다. ‘똑똑함’이라는 것도 효율성과 창조성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정치력과 지력의 차이와 같다.) 조직 생활도 마찬가지여서, 성과와 혁신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위해 필요한 능력-성격은 다르다. 성과는 부지런함과 능력 모두 필요하며, 부지런함으로 똑똑함을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혁신과 창조는 부지런함과 상관이 없거나, 오히려 지나친 피로감은 창조력을 죽인다. 이런 두 가지가 이른바 '멍부형 조직'의 문제점이다.


자, 그럼 다같이 우리모두 노력해서 내 안의 멍부를 죽이고 똑게가 되면 될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똑게가 되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멍부는 비교적 단순한 작업을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사람이 일하는 것은 본인의 존재감을 느끼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멍부는 일할 게 없으면 불안해 한다. 이런 사람에게 갑자기 창의적인 과제를 던져주면 불안해 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다가, 본인의 장점인 부지런함은 잃고 아무 것도 안 하게 되기 쉽다. 하지만, 비교적 단순한 업무를 남들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견뎌내면서 성과를 올리는 것은, 분명히 나름 쓸모있는 능력이다. 

문제는 부지런함을 강요하는 것이다. 멍부가 똑게가 하루아침에 될 수 없듯이 똑게에게 부지런함을 강요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멍부가 긍정적으로 조직에 작용하려면 똑게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먼저 퇴근하는 똑게를 개념없다고 바라보는 멍부는 상사로서의 자격이 없다. 하지만 부지런함으로 어필하는 멍부와 똑똑함으로 어필하는 똑게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고 평가한다면 적어도 멍부형 상사는 조직에 피해를 끼치거나 하지는 않는다. 멍부형 직원은 야근수당과 같은 형태로 보상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이걸 체계화 할 수 있는 것은 조직의 보상 체계다. 다양한 유형의 직원들이 있고, 조직은 그 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여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 평가 체계가 멍부 중심으로 돌아가면 그 조직은 와해되는 것이다. 나쁜 평가 체계는 부지런함 위주로 , 누가 끝까지 회사에 남아 있나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수치로 나타나는 실적 중심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것은 부지런함 위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겉으로 보여지는 숫자에 매몰되어 질적인 측면은 간과하고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제일 좋은 평가 방법은 질과 양 모두를 근거로 직원을 평가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숫자가 아닌 상사의 호불호가 중요해지면서 아부를 잘 하는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잠재적인 위험이 있기는 하다. 이것을 극복하면, 최상의 평가 체계를 갖출 수 있다.

부지런함 위주, 혹은 실적 위주로 직원을 평가하면, 조직 전체가 멍부스러워진다. 야근이 일상화되면서 창조력은 무뎌지고, 동시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더라도 실적 만들기에 힘을 낭비하게 된다. 이런 조직에서 똑게와 똑부는 회사를 나가든가, 아니면 그냥 같이 무분별한 실적 만들기에 동참하면서 스스로 멍부가 된다. 효율성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창조력은 찾아보기도 힘들게 된다.


무다구치 렌야의 이야기도 나왔지만, 세상에 있는 멍부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무다구치 렌야의 모습을 보면 멍청하고 무책임한 것은 느껴지지만, 그가 과연 (대한민국 독립에 공헌한 거 빼고) 긍정적인 면이 있나, 부지런했나? 는 좀 의문이기 때문이다. 사실 멍부는 우리 주위에 대단히 많다. 한국은 민주 공화국을 시도한지 70년밖에 되지 않아, 비교적 사람들 모두 시키는 것을 열심히 하는 데 익숙해져 있고 어딜 가나 멍부형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리고 창조적 혁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목표가 정해지면 그걸 빠르게 따라가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똑게 유형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 않게 이미 가지고 있는 멍부 속성을 보다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똑게를 존중하면서.


Posted by 바른보수
보수2014.09.04 03:32

요즘 '진보는 왜 망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강준만 교수가 들고 나온 "싸가지 없는 진보"론에 대해서 진중권, 이택광 교수가 각각 '메시지론', '일상의 정치론'을 들고 나와서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집권 이후 다양한 문제점들이 등장했는데도 왜 새누리당의 강세는 이어지는가? 에 대한 논의, 그리고 자아성찰 자체는 긍정적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주장들이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을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제가 볼 때는 모든 의견들이 아주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진보 대 보수"의 대결 구도 자체가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감히, '진보 그 단어 자체가 문제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 정치세력이 대결할 때 어떤 판에서 대결하는가? 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프레임"을 짜는 일은 나에게 유리하고 상대에게 불리한 쪽으로 대결 구도를 맞추는 것입니다. 대다수에게 비난받은 특정한 이미지를 상대방에 덧씌워서, 그 특정 이미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와서 선거에서 승리를 도모하는 방법입니다. 선거에서 사람들의 지지정당 선택은 다양한 기준에서 이루어지고 그것들 중 '최악'을 피하는 방식은 많은 부분에서 이루어지고 이 때 프레임짜기는 대단히 효과적입니다.

제일 유명한 것은 예전 냉전 시대의 매카시즘에서 유래한, "종북 프레임"일 것입니다. 한국은 여전히 분단국가이고 북한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사람이 많은 이상 이 종북 프레임은 유효합니다. 하지만 현재 야권에서 실질적으로 '종북'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행동을 하는 집단은 상당히 작습니다. 검찰에서 '종북'의 정의를 확장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종북을 실제로 적용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야권에서 주의해야 할 단어이긴 하지만, 종북 프레임은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 다음은 "친노 프레임"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 평가는 엇갈립니다. 다른 대한민국 역대 정부와 비교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생각할 때, 노무현 정부 집권 당시 노무현 정부 지지율은 상당히 낮았고, 그런 의미에서 대중들 중 노무현 정부에 상당히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동시에 현재 야권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연관이 깊은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그래서 친노 프레임은 그 효력이 상당합니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야권의 정치인들 상당수가 각자 행보를 다르게 가져가면서, 야권에 분파는 존재한다고 해도 과연 친노라고 불리는 분파가 있는가? 조차도 의문스럽습니다. 하지만 일부 극성 야권 지지자들이 선민의식, 진영논리, 분노조절실패에 물들어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그들 밖에 있는 사람들을 공격하면서, 이들이 '깨시민'으로 조롱당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샀습니다. 이들의 지지층이 노무현과 어느 정도 일치하고, 노무현 대통령 집권 시절에 인터넷의 정치적 파급효과가 강해졌기에, 이것이 기존 노무현 정부 반발층과 합세하여 상당한 파워를 발휘합니다. 야권에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프레임 중 하나입니다.

"진보 프레임"을 이야기하기 전에 하나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입니까? 그럼 진보, 보수, 좌파, 우파의 의미를 당신은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진보와 좌파는 사회적 약자를 지지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사람들로 알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면 우파와 보수는 기득권층을 지지하는 악당들입니까? 혹시 새누리당이 보수를 자처한다는 이유로 보수 = 새누리당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얼마 전에 ㅍㅍㅅㅅ에도 꽤 적절한 문제점을 지적한, 하지만 제목이 좌파 우파 개념을 잘못 사용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글 제목은 "예수님은 좌파인데 왜 목사님들은 우파인가"

우선 좌파/우파/진보/보수의 의미부터 명확히 해야 합니다. 링크한 글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http://ppss.kr/archives/21885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보수성은 예전에 있던 것을 존중하면서 서서히 변화하자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기득권층이 현재 상태를 선호하기에 보수성에 가깝긴 하지만, 그저 현재 상태를 지지하는 것은 '수구'입니다. 반면 진보는 방향만 적절하다면 빠른 변화를 원합니다. 더 빠른 속도를 원한다면 부정적인 의미를 곁들여 '급진파'로 불립니다. 문제는 새누리당에 반감이 있더라도, 진보에서 주창하는 빠른 사회변화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 역시 많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이 지지를 잃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정책들을 실행하면서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꼈고, 노무현 정권이 '급진적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지만, 새누리당이 가진 여러 문제점은 보수라는 단어와 상관이 별로 없습니다.

좌파/우파는 더더욱 말이 안 됩니다. 민영화 정책은 우파에 더 가깝습니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다른 정책인 외환시장과 물가에 대한 정부 통제 및 개입, 4대강을 비롯한 대규모 토목사업과 큰 정부 지향정책, 재벌 중심의 경제 체제, 권위주의, 공권력 강화와 언론통제 등은 우파와 상관이 없고, 통제 경제적 측면과 큰 정부는 오히려 좌파에 더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우파 안에서도 상당히 오른쪽인 신자유주의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새누리당은 상황에 따라서는 노인연금과 같은 좌파적인 복지정책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합니다. 절대로 새누리당은 우파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떨까요? 민주당계는 사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그 위치를 달리해 왔습니다. 그들 중 민주당이 집권했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의 정책적 움직임은 쉽게 좌파라고 보기 어렵고, 상당히 우파에 가까웠습니다. 지금 현재의 모습은 여러 인물들이 각각 위치를 폭넓게 하여 분포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 안희정 등이 내는 목소리는 각기 상당히 다릅니다. 이들을 묶어서 진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새누리당보다 조금 더 왼쪽에 있을 뿐이죠.

한국에서 좌파/우파는 공산주의 북한과의 대립 과정에서, 좌파는 공산주의라는 딱지가 붙었고, 그게 그대로 내려와 북한과 친하면 좌파, 북한에 반대하면 우파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적대적인 새누리당이 우파와 보수의 이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실제 움직임은 서구에서 정립된 우파/보수 이미지와 많이 다르며, 서구 정치 구도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진보 프레임"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새누리당 대 새정치민주연합 (혹은 범 야권 전체)로 이루어지는 대한민국의 정치 구도를 진보와 보수의 대결, 혹은 좌파와 우파의 대결 구도로 인식하는 일입니다. 당신이 좌파를 선하고 우파를 악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기득권층을 비난할 때 새누리당이라는 단어 대신 보수 혹은 우파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면, 이 프레임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쓰는 사람은 별 문제를 못 느끼지만, 이 프레임은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보수 및 중도층을 야권에서 밀어내면서 야권 결집을 어렵게 만듭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비록 한국의 야권 정치인들이 종북 성향이 없다고 해도, 한국에서 오랜 동안 좌파/진보 = 북한이었기 때문에, 진보 프레임은 간접적으로 종북 프레임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급진적 성향이 있었던 노무현 정권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 통합진보당 사태를 분명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진보라는 단어 그 자체에도 반감을 가집니다. (좌우 구분으로는 노무현 정권은 중도에 가깝지만 보수/진보 구분으로는, 적어도 사람들이 가진 이미지는, 진보 내지는 급진입니다.)

그 외에 보수라는 단어 자체에서 안정감을 갖고 진보라는 단어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40-50대의 보수성향은 단순히 부동산, 뉴타운과 관련된 새누리당의 장밋빛 공약과 중년층의 탐욕으로 인식해서는 안됩니다. 나이가 들고 가장이 되면, 더군다나 한국에서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복지 시스템이 약한 나라에서는, 정치적인 급격한 변화에 대해서 대단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을 뭔가 들어엎어야 할 것 같은 진보 쪽의 분위기에 불안감을 느끼기에, 새누리당이 싫어도 안정적인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보 프레임에 걸려 있는 워딩을 쓸 때마다, 새누리당이 아닌 보수와 우파를 비판할 때마다, 진보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은 야권에서 멀어져서 정치 무관심층 내지는 새누리당 지지로 이동합니다. 현재 정권에 대한 문제 의식의 출발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진보/보수의 선상에서 문제의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언급한 민주주의 후퇴 등등에 문제의식이 있다면, 지금 상황을 진보/보수의 구도로 보는 생각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강준만이 싸가지없음이라는 단어를 화두로 던짐으로써 '친노 프레임'에 영향을 주는 일부 소수 극성 야권 지지자들에게 "당신들이 진짜 문제다!"라는 돌직구를 던졌다는 것에 저는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 이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진중권은 이 문제에 대해 컨텐츠, 기획력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진중권도 싸가지를 갖춰야 할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정치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컨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그냥 여당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여 논쟁 자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제가 이야기했던 비전 이야기와 같습니다. http://ppss.kr/archives/25451

문제의식의 토대를 전환하여 일상의 정치로 돌아가자는 이택광 교수의 이야기는 대립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문제의식의 토대를 전환하고자 하는데, 저는 이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의 제일 근원적인 출발은 진보 대 보수의 구도 자체를 벗어던지는 데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즉 진보의 방향성에 대한 세 가지 이야기 모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으며, 통합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바라보는 사람도, 또다른 '진보의 내분'으로 보여지지 않도록 자제한다면 상당히 발전적인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크게 나누어 "일부" 안철수 지지자와 "일부" 문재인 지지자의 상호 비아냥과 비난은 물론,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 대해 날선 반응을 보이는 행동이 "싸가지없음을 청산하자"는 기치 아래 자제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삿대질하는 분위기를 가라앉힌 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발전적인 논의를 하고, 여기에 진보 대 보수의 구도를 넘어서 여권, 새누리당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폭넓게 종합한다면, 충분히 야권의 재집권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여권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분명히 충분히 많기 때문입니다. 야권이 지리멸렬해서 그것을 놓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마다 현 정권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문제점의 출발은 권위주의와 공권력 신뢰 붕괴, 언론 통제에 따른 민주주의의 위기입니다. 다른 문제도 많겠지만, 우선 정치 혐오를 벗어나 모든 문제를 열린 위치에서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해결할 수 있는 민주적 절차를 갖추는 게 먼저 아닐까요? 그러한 절차가 갖춰진 다음 진보와 보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상호 비난을 중단하고, 진보 대 보수의 구도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글자 수 줄이기를 좋아합니다. 새정치연합에 대해서 새정연이라 부르느냐 새민련이라 부르느냐 말이 많아던 것처럼 말이죠. 그래도, 새누리당은 당명 내지는 기득권층으로 불려야지, 그들과 별 상관없는 보수, 우파로 부르는 것은 말 좀 편하게 하는 대가로 새누리당의 집권에 엄청난 도움으로 주는 일입니다.

Posted by 바른보수